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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폭 사건으로 세상이 많이 시끄럽습니다. 거기에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는 학폭 사건을 다루면서 학교 폭력을 수면 위로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요.

 

최근 불타는 트롯맨에 나왔던 황영웅 사건도 그렇고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지만 하루만에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도 학폭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최근 야구계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학폭 사건에 대해 다루려고 합니다.

 

 

최근 학폭 관련해서 가장 뜨거웠던 선수는 안우진 선수죠.

 

 

2022 시즌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안우진 선수는 201710월에 1차지명으로 현 키움인 넥센 히어로즈에 지명이 됐습니다.

 

20178SBS에서는 단독 기사로 MLB 관심받는 특급 유망주의 후배 폭행 사건을 다뤘습니다.

 

이 영상에서 모자이크로 실루엣만 나오게 됐는데 누가봐도 안우진 선수였죠.

 

휘문고에서는 폭행은 했지만 폭력은 없었다는 이유로 조치 없음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후 교육청이 파견한 학교폭력사안처리지원단에서 실제 폭력이 이뤄졌고 1차 학폭위에서 조치 없음 처분을 내린 것이 잘못됐다고 했지만 2차 학폭위에서는 안우진 선수에게는 서면 사과 및 교내봉사의 처분만 내려졌습니다.

 

학교 폭력 사안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고 본 것인데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는 넥센의 지명 이후 자격정지 3년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이 징계에 따라 “3년 이상의 자격 정지를 받은 사람은 국가대표에 영구히 차출될 수 없다라는 조항에 의해 안우진 선수는 국가 대표로 출전할 수 없게 됩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아마야구를 관장하는 곳이기 때문에 프로 생활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이 징계에 따라 상무에도 떨어질 확률도 커지게 됐죠.

 

그 후 교육청 민원에 안우진 학교 폭력 사건이 접수되면서 수서경찰서에서는 수사에 나섰습니다. 수사 결과는 특수 폭행죄가 아닌 폭행죄로 결론이 내려졌으며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라 하여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해야지만 처벌을 받게 되는데 원하지 않았으므로 처벌이 내려지진 않았습니다.

 

그 후 피해자 3명이 안우진 선수는 학교 폭력을 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 잘 해줬던 선배라며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로 지목됐던 4명 중 3명의 의견이라는 점과 나머지 1명은 그 전에 연락도 없다가 이제 와서야 사과 의사를 표명한다는 것 자체가 진정성이 없다는 식의 인터뷰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WBC 대표팀 명단에서도 제외되면서 추신수 선수는 징계를 다 받은 선수가 불합리하게 WBC에 뽑히지 못했다는 안우진 선수에 대해 한국은 용서가 쉽지 않다라는 발언을 해 여론이 들끓었는데요.

 

이에대해 박찬호 위원은 시대가 원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이런 여론을 정리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알려진 것만 정리해봐도 안우진 선수의 학교 폭력은 실제로 행해졌으나 그 징계가 과도한 것이냐 아니냐의 결론이 남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두산의 이영하 선수

 

 

전지훈련에서 머리를 박게 하고 야구 배트로 폭력을 행했다.

눈 뜨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집합시켜서 때렸다.

 

20212월 한 갤러리에 올라왔던 글입니다.

 

이 글에서 이영하와 김대현 선수가 가해자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두산과 LG에서도 자체 조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자체 조사에서 두산과 LG는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했을 때 피해자와의 주장이 상반되고 있으며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판단을 유보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제까지 있었던 학교폭력 사건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직접 나와서 가해자를 지목했다는 것인데요. 3월에 있었던 PD수첩에서 피해자와 여러 증언자들이 나와서 폭력사건에 대해 증언했다는 점으로 봤을 때 실제 어떤 폭력 행위는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 않을까라는 예측은 해볼 수 있습니다.

 

1월에는 김대현 선수의 무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피해자들의 의견이 명확하지 않아 죄를 묻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는데요. 피해자였던 원고가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날에는 김대현 선수가 청소년 대표에 뽑혀 같은 공간에 없었다는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이 사건은 작년 9211차 공판이 있었고 4차 공판이 모래인 33일 열립니다. 이 공판이 끝나고 5~6월에 선고가 이뤄질 예정인데 김대현 선수의 무죄로 인해 이영하 선수의 재판도 약간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김대현 선수와는 다르게 다른 폭력 사건도 있는 점에서 어떻게 흘러갈지는 추후 결과를 봐야할 것 같습니다.

 

두산의 김유성 선수

 

 

NC 다이노스는 김유성을 지명합니다.

 

2021년 뜨거웠던 신인드래프트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인드래프트 이후 갑작스럽게 학교폭력 사건으로 또 한 번 뜨거워집니다.

 

학교 폭력 피해자였던 학생의 부모가 글을 올리게 되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것입니다.

 

NC는 김유성 선수를 안고 가기 위해 나서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겠다고 밝혔으나 피해자의 부모가 다시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글을 올렸고 지명을 철회하라는 뜨거운 여론에 결국 지명을 철회하게 됩니다.

 

KBO 사상 최초로 지명 철회가 이뤄진 것입니다.

 

구단이 직접 철회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재지명 절차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학교폭력 가해자는 프로에 지명을 받을 수 없다는 선례가 만들어져 야구팬들은 환영했습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는 1년 출전정지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이후 한국에서 야구로 나아갈 수 있는 모든 길이 막혀버렸고 결국 고려대 야구부에 진학하게 됩니다.

 

증거불충분으로 인해 불기소 결정이 내려지긴 했으나 폭력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후 1년의 징계는 이미 이행했고 NC에서 지명 철회를 하면서 지명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신인드래프트에 나갈 수 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결국 202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19번에 두산에 지명됩니다.

 

이로 인해 두산팬들은 트럭시위까지 하며 김유성 지명 철회를 요구했으나 두산은 김유성 선수를 안고 가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또 다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한때 논란이었던 미투에 이어 요즘에는 학교폭력, 즉 폭투로 인해 연예계, 사회 전반에 걸쳐진 인물들의 학교 시절 폭력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은 실제로 하면 안 되는 것이고 학교폭력을 했던 가해자의 경우에도 피해자의 용서 여부를 떠나서 그 죄는 꼭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0년의 야구 역사 속 폭력 사건을 봐오면서 예전 운동부에 당연시 됐던 학교 폭력 등을 이제는 시대가 변한만큼 하나하나 수면에 끌어 올려 현재 학교에서 폭력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결국에는 어떻게든 처벌을 받는다는 사필귀정의 모습을 사회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봅니다.

 

NC의 지명철회로 인해 좋은 선례를 남겼지만 결국 프로에 지명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이런 말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범죄자에 관대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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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의 기록을 갖고 있는 남자 
KBO최초 은퇴시즌에 골든 글러브를 받은 사나이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 선수입니다. 

 



1. 이대호 선수의 학생시절

추신수 선수와 이대호 선수는 같은 수영 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모 프로그램에 나온 추신수 선수는 이대호 선수가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본인 때문이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요 .
학교에 전학온 추신수는 자기 반에 고등학교 선수가 있다고 야구부 선수에게 알렸습니다. 
그래서 그당시 야구부 감독은 꼭 데러오라고 했고 이 선수는 커서 한국야구의 레전드 이대호 선수가 됩니다. 
이때 당시의 감독이 정장식 감독인데 이대호의 야구부 가입을 위해 이대호의 가족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했고 이대호의 친척들이 지원을 해주면서 야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대호 선수는 추신수 선수가 롯데 박정태 선수의 조카로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해 부러움을 갖고 있었는데요. 
그당시 박정태 선수와 더불어 자주 수영초등학교를 찾아왔던 박계원 감독이 이대호의 딱한 사정을 듣고 물심양면으로 이대호 선수가 야구를 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초등학교에서는 현재의 모습에는 상상이 가지 않는 유격수를 맡기도 했습니다. 
이대호 선수의 야구인생은 대동중학교 신종세 감독을 만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신 감독은 이대호 선수를 직접 스카우트 해오면서 본인 집에서 2년 6개월 간 지내게 하면서 투수 또는 포수로 지내면서 여느 아마추어 선수들과 비슷하게 투타겸업을 합니다. 
이대호의 가능성을 본 여러 감독들의 도움으로 이대호 선수는 야구명문 경남고로 진학하게 되었고 경남고 4번타자를 도맡으며 세계청소년 선수권 대표로도 뛰게 됩니다. 
이후 이대호 선수는 2001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롯데의 지명을 받게 되는데요. 1라운드에서 추신수 선수가 지명되었으나 해외로 진출하게 되면서 1라운드와 다름 없는 대우를 받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듯이 이대호 선수가 지명 당시에는 투수로 지명이 되었는데요. 하지만 구속이 다른 투수와 비교했을 때 빠르지도 않았고 어깨 부상까지 겹치면서 타자로 전향하게 됩니다. 

 



이 당시 경남고 코치였던 이종운 감독은 권두조 롯데 타격 코치에게 이대호는 타격에 잠재력이 많은 선수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하면서 2군 감독이었던 우용득 감독이 이대호 선수를 타자로 전향하는 것을 허락하게 됩니다. 
권두조 코치는 이대호 선수에게 리배티응ㄹ 시켰는데 타격 연습을 하지 않았던 선수가 담장을 뻥뻥 넘기는 것을 보고 아주 놀랐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대호 선수의 첫 1군 데뷔는 좋지는 않았는데요. 2001년 막바지에 그당시 외국인 타자였던 펠릭스 호세 선수가 그 유명한 '헤이 영수 돈 두댓' 사건으로 인해 8경기 징계를 받게 되면서 대타로 콜업되게 됩니다. 
마산에서 삼성라이온즈와의 데뷔전을 치뤘으며 데뷔전 다음 경기에서 첫 안타를 신고합니다. 2001년 1군 6경기에 출전하여 8타수 4안타로 5할 타율을 보였으나 표본이 너무 적어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2002년에는 정식감독이 된 우용득 감독이 신인이었던 이대호 선수를 4번 타자로 기용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였으나 15연패로 우용득 감독이 경질되기 시작하면서 롯데의 암흑기가 시작됩니다. 

 


롯데 팬이라면 치를 떠는 감독 중 한 명인 백인천 감독입니다. 
이승엽을 키워냈다고 평가를 받는 백인천 감독은 삼성 감독의 시절을 지나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던 당시 롯데의 감독으로 오게 됩니다. 
본인의 타격 이론을 너무 믿었던 탓인지 그 당시 잘하고 있던 선수들의 타격폼을 바꾸는가 하면 바뀌지 않는 선수에게는 벤치에 박아두기도 하는 등 롯데의 타자들의 폼을 많이 망가뜨렸습니다. 
2002년 시즌 포기를 선언하면서 타자 체질을 바꿔야 한다며 이대호 선수에게 쪼그려 뛰기를 시킨 일화는 아주 유명합니다. 
이대호 선수는 쪼그려 뛰기와 오리걸음을 하면서 무릎에 부상이 오게 되었고 그 후 게속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2003년은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 못했고, 2004~2005년에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였는데요. 이대호 선수가 유명해진 것은 2006년부터입니다. 1984년 트리플 크라운이었던 이만수 선수 이후로 2년 만에 타율, 타점, 홈런 1위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게 됩니다. 
이때 1루수 골든글러브를 받았으나 팀이 7위기도 했고 타고투저 시절이라 26개의 기록으로 홈런왕을 달성하여 크게 주목을 받지도 못했고 류현진 선수도 투수부문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한국시리즈 MVP를 받으면서 이대호 선수의 트리플 크라운은 저평가를 받게되기도 했습니다. 
이대호 선수에게는 모르시는 분들도 많은 비공식 기록 2번의 사직구장 장외홈런이 있는데요. 이 장외홈런이 처음으로 나온 해가 2007년입니다. 
이때는 거의 대호 자이언츠라고 불리기도 했고 거의 이대호와 여덟 난장이라고 할만큼 이대호 선수만 거르면 된다는 타선이었습니다.
2008년에는 팀이 비밀번호 시절을 끝내며 데뷔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을 가지만 아주 짧은 가을야구였으며 이때 있었던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군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베이징 때는 이승엽 선수보다는 이대호 선수가 타율도 좋고 장타도 많이 쳤지만 준결승, 결승에서의 이승엽 선수의 활약으로 인해 약간 묻힌 감이 있습니다. 

 


이대호 선수의 커리어 하이 시즌 2010년에는 무려 타격 7관왕을 하게 됩니다. 
이때의 기록은 127경기 493타수 174안타, 타율 3할 6푼 4리, 44홈런, 133타점, 99득점, 출루율 4할4푼4리, 장타율 6할6푼7리로 도루를 제외하고 모든 상을 휩쓸었습니다. 
이 해에는 이대호 선수가 KBO MVP를 거머쥐었고 시상식에는 이대호 선수를 부른 다음 MVP 트로피를 포함한 총 8개의 트로피를 받게 됩니다. 
KBO에서 거의 모든 상을 휩쓸며 최고의 타자가 된 이대호 선수는 연봉 조정에서도 누가봐도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 봤으나 롯데는 팀 내 최다 실책과 팀 성적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이대호 선수가 제시한 7억이 아닌 6억 3천만 원을 제시하게 됩니다. 연봉조정위원회에서도 결국 롯데의 손을 들어주게 되면서 롯데는 7천만 원 때문에 이대호가 실상 내년 FA에서 의리를 지킬지 의문이었죠. 
2011년 이대호 선수는 커리어 4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게 됩니다. 이 때의 타율은 3할 5푼 7리로 오른손 타자 최초 타격왕 2연패를 하게 됩니다.
이대호 선수는 이때 FA자격이 신청되어 롯데와 협상을 결렬하고 오릭스 버팔로즈와 2년 총액 7억엔으로 계약합니다. 
이때부터 이대호 선수의 해외 기록이 시작되는데요. 첫해부터 NPB에서 OPS 1위를 달성하고 팀내에서 득점, 도루를 제외하고 모든 부문이 1등이었는데요. 거의 롯데의 이대호와 여덟난장이를 재현한 모습이었습니다. 
첫해부터 퍼시픽리그 베스트9 1루수에 선정이 되면서 이대호 선수는 일본 리그에 완벽 적응하게 됩니다.
2013년에도 오릭스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이대호는 FA자격을 얻어 소프트뱅크로 이적하게 되면서 커리어상 처음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하게 됩니다. 롯데에서는 꿈도 꾸지못했던 우승 경력이죠. 
다음해 2년 연속 우승을 하게 된 소프트 뱅크에서 이대호 선수는 16타수 8안타 2홈런 8타점을 기록했고 5차전까지 결승타 3개를 쳤습니다. 결승에서는 2홈런을 치게 되면서 한국인 최초 일본시리즈 MVP를 달성하게 됩니다.

 


같은 해 열린 WBC 프리미어 12 도쿄대첩에서 9회 역전 적시타를 치면서 한국이 이 대회에서 우승하게 되는데요. 대회 베스트 11 지명타자로도 선정되기도 합니다. 

성공적인 일본 커리어를 마친 이대호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게 됩니다. 하지만 스프링캠프 초청 마이너리그 스플릿 계약으로 아무리 잘해봐야 플래툰, 아니면 백업 대타로 밖에 뛰지 못하는 계약이었습니다. 

 

 


시범경기에서 괜찮은 기록을 보였던 이대호 선수는 결국 최종 25인 로스터에 포함되면서 전반기에 타율 2할 8푼 8리로 메이저리그 첫해 치고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후반기의 타율 부진으로 많이 깎아먹기는 했으나 플래툰 계약 때문에 들쭉날쭉한 경기 기용은 그의 경기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최고의 타자가 세계 최고 리그에서 평균의 성적을 올렸다는 아쉬운 팬들의 소리도 있던 해였습니다. 
다음해에는 이대호 선수가 국내로 돌아오면서 4년 총액 150억으로 그당시 최고 금액으로 롯데에 복귀하게 됩니다. 
이대호가 돌아온 2017년 롯데는 정규시즌 3위로 5년 만에 포스트시즌을 진출하였으나 경험부족으로 인해 빠르게 탈락했습니다. 
이해에 5번째 골든글러브를 받은 적이 있으나 외국인 선수 수상을 하는 것이 좋지 않았던지 성적이 좋았던 외국인 선수들을 주지 않고 받은 상이어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후 3년 간 이대호 선수는 기대에 약간 못 미치는 성적이었으나 나이를 감안했을 때는 좋은 성적이었으며 거의 모든 경기에 출전하면서 체력적인 부담도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롯데에서도 이대호 선수를 대체할 선수도 없었으며 거의 이대호 선수가 롯데 타선을 이끌어갔다고 해도 과언일 만큼 팀 내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도맡아야 했으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작년에는 이대호 선수가 은퇴를 선언한 해였는데요. KBO는 2번째 은퇴투어를 계획했으나 여러 팬들이 이대호 선수가 은퇴투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이대호 선수도 은퇴 투어를 고사하게 됩니다. 
이전 2번째 은퇴투어를 하려고 했던 박용택 선수가 팬들이 국가대표에서 활약하지 못했다며 은퇴투어에 반대를 하면서 고사했던 사건이 이때 영향을 끼쳤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승엽과 추신수가 이대호가 아니면 도대체 KBO에서 누가 은퇴투어를 할 수 있나라고 하면서 힘을 실어주게 되면서 결국 KBO에서 은퇴투어를 하겠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은퇴시즌인 2022년 3할 3푼 1리에 101타점, 23홈런을 찍으면서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게 됩니다. 은퇴 시즌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사상 첫 선수가 됩니다. 거기다 역대 최고령 골든글러브 수상이었습니다. 
그해 한국프로야구 OB모임인 일구회에서 개최하는 일구상 시상식에서 KBO 최대 안타와 한국인 최초 일본시리즈 MVP, 국가대표 통산 ops, 타점 1위로 대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성공적인 야구 인생을 마친 이대호 선수는 이제는 우리가 자주보는 TV의 예능으로, 또는 해설위원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올해 이대호 선수가 WBC 해설위원으로 데뷔하게 되면서 곧 야구 중계에서 이대호 선수의 목소리를 들을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타자 이대호 선수의 이야기. 앞으로의 야구 인생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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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으로 22일 나폴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벌인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2대 0 완승을 거뒀습니다. 

전반 39분 나폴리의 공격수 빅터 오시멘의 선제골이 있었습니다. 

오른쪽 윙 로사노의 크로스를 받은 오시멘 선수가 그대로 골문으로 밀어 넣으면서 첫 골을 신고했습니다. 

 

후반 시작 후에는 프랑크푸르트의 무아니와 나폴리의 앙귀사의 충돌이 있었는데 무아니가 앙귀사의 발목을 밟으면서 퇴장을 받게 됩니다. 

 

그 이후 10명이 된 프랑크푸르트는 나폴리의 공세 속에 힘들게 경기를 풀게 됩니다. 

 

후반 20분에는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의 힐패스로 조바니 디 로렌초의 발 앞으로 패스가 되었고 그대로 밀어넣어 2:0을 만들게 됩니다. 

 

 

현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인 김민재는 나폴리의 최종 수비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축구통계 사이트인 후스코어닷컴에는 김민재가 이날 공중볼 경합에서 5차례 이겼고 걷어내기를 7번 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전반전에는 1:1 상황이 될 뻔한 상태에서 김민재 선수의 슬라이딩 태클로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습니다. 

 

태클은 총 5번으로 공중볼 경합, 걷어내기 총 3부문 모두 양팀 통틀어 최다였습니다. 

 

패스도 팀 내 최다로 132회 패스를 시도해 94.7% 성공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번 경기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었는데요. 

프랑크푸르트의 중앙 미드필더인 가마다 다이치와 김민재의 한일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마다는 나폴리의 수비진에 고전하면서 유효슈팅도 한 개에 그쳤습니다. 

 

이 유효슈팅이 프랑크푸르트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효슈팅이었습니다. 

 

2차전은 한국시간으로 다음 달 16일 오전 5시에 예정돼있습니다. 

 

나폴리의 홈인 디에고 마라도나 스타디움에서 나폴리가 프랑크푸르트를 꺾고 8강에 진출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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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봉 삭감된 프로야구 선수 TOP 5, 연봉삭감률 기준으로 선수를 정리해봤습니다.

각 구단의 알려진 연봉계약표를 토대로 정리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년계약, FA를 제외한 명단입니다. 

 

 

연봉삭감률 TOP 1 NC 박석민

 

박석민 선수는 2020 NC 2+1 FA계약을 맺었습니다. 그 결과 작년 연봉은 7억이었으나 술자리 파문 등의 이유로 2021 1군에서 말소되어 작년 7월에야 1군에 등록됐습니다.

 

16경기에 나와 1 4 9리의 성적을 보였고 NC에서는 올 시즌 92.8% 연봉 삭감을 제안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다른 팀과의 계약은 어려운 점 때문에 박석민 선수로서는 현역 연장을 위해 이를 받아들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NC의 경우에는 박준영 선수와 노진혁 선수의 타팀 이적으로 인해 주전 3루수가 없기 때문에 올해 박석민 선수의 역할이 중요하며 다른 선수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자리를 지켜줘야 하는 베테랑 선수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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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2 한화 하주석

하주석 선수는 작년 2 90만 원의 연봉을 받았습니다. 명실상부한 한화의 주전 유격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왔으나 11월 음주운전 파문으로 인해 출장정지 70경기를 받는 등 연봉삭감이 불가피했습니다.

 

2023년도 연봉은 1억으로 50.22%의 연봉 삭감이 있었습니다.

 

2 7 2리에서 2 5 8리로 타율이 줄었기 때문에 성적으로 인해 연봉 삭감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타율만 보면 수비가 중요한 유격수로는 준수하기는 했으나 풀시즌을 뛰었을 때 타율 중 2번째로 낮았기 때문에 연봉이 삭감됐습니다.

 

하주석 본인으로서도 KBO 70경기 징계도 있고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연봉이 삭감되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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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3 NC 이민호

이민호 선수는 2022년 기준 연봉 1억이었으며 올시즌 연봉은 5천만 원입니다.

 

마무리 임창민을 대신했던 2018년도 연봉이 1 8500에서 2019 11경기 나와 6.52의 방어율을 찍고 8500만원이 삭감된 1억의 연봉을 받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였습니다.

 

작년에는 1군에서 기록이 없었고 2군 기록은 6경기에서 4.76의 방어율을 보였으므로 연봉삭감은 불가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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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4 KT 강백호

강백호 선수는 2022년 연봉이 5 5천이었으나 올 시즌 연봉 2 9천으로 47.27% 삭감됐습니다.

 

한국 야구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 중 한명으로 꼽히는 강백호 선수는 2021시즌 3 4 7리를 찍어 5억이 넘는 연봉을 받게 됐습니다.

 

2022시즌 부상 등의 이유로 2 4 5리에 그쳤습니다. 전 시즌 16개의 홈런에 비해 두 자릿수 홈런을 치지 못했던 점도 삭감의 큰 이유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나이도 아직 젊고 앞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많기 때문에 앞으로의 강백호 선수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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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5 nc 심창민

2021년 삼성에서 nc로 트레이드 된 심창민 선수의 연봉은 2022 2 8천만 원에서 1 5천만 원으로 46.43% 삭감되었습니다.

 

2021년 삼성에서 59경기에 나와 5점대 방어율을 찍었던 심창민 선수는 2022 nc에서 방어율 14.21을 찍었으며 2군에서 선수생활을 하였습니다.

 

nc로서는 심창민 선수를 김태군 선수와 트레이드 함으로써 불펜 강화를 하려고 했으나 부진으로 인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김태군 선수는 삼성에서 102경기에 나와 2 9 8리를 찍으면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달성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번 트레이드는 삼성의 승리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합니다만 그동안 삼성의 불펜을 오랜기간 지켜오면서 검증이 된 선수이기 때문에 올 시즌 부진을 딛고 다시 nc의 불펜을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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